기후변화는 허리케인과 태풍의 강도, 빈도, 경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과거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 평균 해수 온도의 상승은 대기의 에너지량을 증가시켜 태풍의 세력을 키우고, 느린 이동 속도와 폭우, 강풍, 해일을 동반해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한다. 최근 2023~2025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관측된 초강력 허리케인과 태풍들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인프라 붕괴와 경제 시스템 마비, 수백만 명의 이재민 발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서는 기후변화가 태풍의 물리적 특성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실제 피해 사례와 함께 분석하고, 향후 대응 전략까지 함께 살펴본다.
태풍과 허리케인의 새로운 시대
태풍(typhoon)과 허리케인(hurricane)은 동일한 열대성 저기압 계열의 기상현상이지만, 발생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태풍', 북대서양과 동태평양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으로 불린다. 이들 현상은 바다에서 발생해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에너지로 삼아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해안 지역에 상륙하며 폭풍해일, 강풍, 집중호우 등 복합적인 피해를 유발한다. 기존에도 태풍과 허리케인은 자연적인 주기로 발생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성격이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특히 2023년 이후 나타난 사례들은 단순한 이상기후의 범위를 넘어,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전환의 증거로 간주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있다. 기온이 높아지면 해수면 온도도 상승하게 되며, 이는 태풍과 허리케인의 ‘연료’ 역할을 하는 해양 수증기의 공급을 늘린다. 즉, 따뜻해진 바다 위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은 과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강력하고 느려지며, 폭우량이 급증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발표에서 “온난화는 태풍의 최대풍속과 강수량을 평균적으로 증가시키고 있으며, ‘슈퍼태풍’ 혹은 ‘카테고리 5급 허리케인’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현상은 단지 기상학적 통계의 변화만이 아닌, 인간의 거주환경, 농업, 교통, 경제 시스템 전체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한반도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태풍 피해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매년 1~2회의 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하거나 근접하며, 항공기 결항, 정전, 산사태, 주택 붕괴 등의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해안 지역의 취약한 인프라는 이러한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태풍 강도 증가가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의 변화는 단순한 강도 상승뿐 아니라, 이동 경로와 지속 시간, 계절적 특성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재난대응 체계가 무력화될 가능성을 시사하며, 향후 기상학적 모델과 사회적 대응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기후변화가 바꾼 태풍과 허리케인의 양상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주요 태풍과 허리케인은 기후변화가 실제로 기상 현상에 미친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는 2023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드리아(Idalia)’이다. 플로리다 서부를 강타한 이 허리케인은 카테고리 4급 강도로 상륙해, 해수면 상승과 폭풍해일로 인한 대규모 침수, 강풍에 의한 주택 파괴,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남겼다. 무엇보다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강수량이 증가했고, 특정 지역에 며칠간 머물며 피해를 극대화했다. 2024년 일본에 상륙한 태풍 13호 ‘하이난(Hinan)’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이 태풍은 서일본 일대를 관통하며 사상 최강의 최대 풍속(시속 250km)을 기록했고, 고베·오사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부었다. 강한 바람뿐 아니라 3m에 가까운 해일이 해안 도시를 덮치면서 항만, 지하철, 병원 등 도시 기반 시설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또한 태풍의 이동 경로 역시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변하고 있다. 2023년 이후 발생한 몇몇 태풍은 동중국해에서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 열도 방향으로 크게 꺾이거나, 필리핀 해상에서 정체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해수면 온도의 분포, 대기 순환, 제트기류의 변화 등 기후시스템의 구조적 변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후변화는 태풍의 ‘폭우 패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평균 기온이 높아질수록 대기 중 수증기량이 증가하고, 그 결과 한 번에 쏟아지는 비의 양도 늘어난다. 이는 단순한 침수 피해를 넘어 산사태, 하천 범람, 하수 역류, 지반 붕괴 등 2차 피해로 연결된다. 특히 도심 지역은 콘크리트 포장과 불투수 면적 증가로 인해 홍수에 취약하며, 태풍이 머무는 시간만으로도 도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또한, 태풍의 계절적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7~9월이 태풍 시즌이었지만, 이제는 6월 이전에 첫 태풍이 발생하거나, 10월 이후에도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에 접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더 오랜 기간 높게 유지되면서, 태풍 발생 환경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재난 대비 모델을 무력화시킨다. 예컨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방재 시스템이나 보험 상품은 이제 새로운 위험 요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부와 민간의 피해복구 및 보상 시스템도 점차 재설계가 요구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태풍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전반적인 ‘패턴’을 뒤흔들고 있다. 더 강력하고 예측불가능한 기상현상은 인프라, 경제, 정치, 외교, 안보까지 전 방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응은 기후 대응 능력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게 만들고 있다.
태풍 시대의 재설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미래 전략
초강력 태풍과 허리케인의 시대, 이제 기존의 자연재해 대응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기초한 새로운 재난 구조를 인식하고, 이에 맞는 정책, 기술, 인식 전환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특히 태풍에 대한 대응은 ‘사후 복구’가 아닌 ‘선제적 적응’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기상 예보의 정밀화와 태풍 경로 예측 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위성, 드론, AI 기반의 기상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통해 태풍 발생 초기부터 예상 경로와 강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빠른 대피 명령과 물자 이동, 인명 구조 활동에 결정적이다. 둘째, 도시 및 해안 인프라의 ‘기후 회복력(climate resilience)’을 높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방파제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하철, 도로, 하수도, 항만, 공항 등 주요 기반시설이 침수와 정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구조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일본은 주요 도시에 침수 방지용 지하 저장소와 자동 폐쇄 수문을 도입하고 있다. 셋째, 보험 및 금융 시스템도 재정비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피해 규모가 커지고 복구에 드는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기후 관련 재해보험의 확대와 공적 보조 체계 정비가 필수다. 또한, 금융기관은 리스크 평가에 있어 ‘기후 변수’를 반영해야 하며, 기업 역시 이에 맞는 공급망 재설계가 필요하다. 넷째, 지역사회의 대응 능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태풍 경보 시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대피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정례화되어야 하며, 특히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별도 매뉴얼도 갖춰야 한다. 공동체 기반의 자율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자체에 대한 적극적 대응 없이는 이러한 노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탄소중립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 해양 보호, 산림 보존 등 구조적 기후대응 정책이 병행되어야 하며, 국제적 협력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풍이라는 형태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경고가 아닌 실천이며, 그 실천은 과학과 기술, 제도와 인식의 융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의 태풍은 인류 문명이 감당해야 할 가장 직접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