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전략이지만, 동시에 전력 인프라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은 자원이 풍부한 외곽 지역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대규모 송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전력망은 대규모 분산형 전원의 유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송전 용량 부족, 선로 혼잡, 전압 불안정, 지역 수용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구조로의 전환이 송전 인프라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국내외 대응 사례와 함께, 필요한 정책·기술·사회적 조치들을 정리합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송전망은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
신재생에너지는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며, 각국은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을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지역별로 대규모 발전 단지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 한 가지 놓치기 쉬운 문제는 전력망 인프라, 특히 ‘송전망’의 한계입니다. 기존의 전력 시스템은 원자력이나 석탄화력 등 대규모 발전소가 수도권이나 산업단지 인근에 위치해 있고, 중심축으로부터 전력을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입지 조건에 따라 발전소가 분산되어 있으며, 대체로 인구 밀집 지역에서 떨어진 외곽, 해안, 산지 등에 설치됩니다. 이로 인해, 발전된 전력을 도시나 산업지로 보내기 위해 장거리 송전이 필수가 되었으며, 이는 기존 송전망의 구조와 운영 방식에 큰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 설치된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고도 송전선로 용량 부족으로 인해 계통 연결이 제한되거나, 출력 제한 조치를 받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는 전력 생산은 했지만 소비지로 전송하지 못하는 ‘낭비’로 이어지고, 경제성은 물론 재생에너지 투자 회수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또한, 갑작스러운 출력 증가나 감소는 전력망의 주파수와 전압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다수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동시에 송전에 참여할 경우 송전선로의 혼잡도가 급격히 증가해 전체 시스템에 부담을 주게 됩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단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사회적 이슈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신규 송전선로 설치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발, 환경 훼손 논란, 부지 확보 문제 등이 그 예입니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망 인프라의 구조적 개편 없이는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발전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신재생에너지 전환 전략은 이제 송전, 계통 운영, 수용성 등 보다 종합적인 에너지 시스템 설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 송전 인프라 문제의 주요 양상과 대응 전략
1. (송전 용량 포화와 계통 연계 지연) 신재생에너지가 집중된 지역은 기존 송전 용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태양광 발전이 활발한 전남, 충남, 제주 등에서는 계통 연계 신청이 쇄도하고 있으나, 선로 용량 부족으로 수 년간 대기 상태가 유지되며 민간 사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2. (출력 제어와 발전 손실) 송전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생산된 전력을 전송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출력 제어 명령이 내려집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의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투자 위축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지연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유발합니다.
3. (전압·주파수 안정성 악화) 신재생에너지는 출력이 급변하기 때문에, 송전망의 전압이나 주파수 유지에 악영향을 줍니다. 특히 다수의 발전소가 동시에 변동할 경우, 지역 단위 송전계통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력 품질 하락과 정전 리스크가 증가합니다.
4. (신규 송전망 설치의 사회적 갈등) 장거리 송전을 위한 고압 송전선로 구축에는 부지 확보, 민원, 환경 훼손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수반됩니다. 실제로 수도권~신서천 간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는 수년 간의 주민 반대가 있었으며, 이는 전력망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입니다.
5. (송전 중심에서 계통 유연성 중심으로의 전환 필요) 기존의 일방향 중심 송전 체계에서 벗어나, 다수의 분산형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양방향 송전망과, 상황에 따라 전력을 분산·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기술이 필수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ICT 기반 계통 운영 기술, 고속 데이터 처리, 자동 제어 시스템 등의 고도화가 필요합니다.
대응 전략으로는 다음이 있습니다. 국가 송전망 중장기 확충 계획 수립 및 조기 실행 수용성 확보를 위한 지역 지원금, 주민 수익 공유 제도 도입, 계통 보강을 위한 변전소, 전압 조정 설비 확충, ESS와 연계된 출력 조절 기술 활용, 마이크로그리드, 지역 전력 거래 시장의 단계적 확산입니다. 이처럼 송전 인프라 문제는 단지 선로 설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정책·사회가 복합적으로 얽힌 과제이며, 이를 풀기 위한 다층적 대응이 요구됩니다.
진정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송전망이 뒷받침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설치해도, 그 전기를 도시와 산업지로 보낼 수 없다면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합니다. 즉,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송전이며, 송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발전 중심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고 있지만, 계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이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송전망 확충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예비 타당성 조사, 환경영향평가, 주민 협의, 시공 등으로 인해 하나의 송전망 구축에는 7~10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부터 인프라 확충에 나서지 않으면, 몇 년 후에는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되더라도 ‘막혀 있는 전력’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송전 인프라는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회적 수용성, 제도 설계, 민원 대응 체계, 인센티브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하며, 주민과의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송전망 설치에 따른 수익 공유나 주민 투자 모델을 통해 반대를 설득하고 있으며, 이런 방식은 제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는 '계획된 발전'이 아니라 '설계된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심에는 탄탄하고 유연한 송전망이 존재해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의 진짜 시작은, 전기가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