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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와 라니냐, 기후변화와 함께 작동하는 숨은 변수들

by 열씸열씸 2025. 7. 29.

엘니뇨와 라니냐 관련 그림

엘니뇨(El Niño)와 라니냐(La Niña)는 태평양 해수 온도 변화에 따라 전 세계 기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기상 패턴이다. 이 두 현상은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며 강수량, 기온, 태풍, 가뭄, 생태계 등 다양한 영역에 복합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가 이러한 엘니뇨-라니냐 주기의 양상과 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엘니뇨와 라니냐의 기본 개념, 2023~2025년의 최신 사례, 기후변화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향후 기후 전망에 대해 심층 분석한다.

엘니뇨와 라니냐, 자연의 리듬인가 위기의 전조인가

지구 기후 시스템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중에서도 엘니뇨(El Niño)와 라니냐(La Niña)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해양-대기 상호작용 현상으로 꼽힌다. 이들은 태평양 적도 해역의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상승하거나 하강하면서, 대기 순환과 기압계에 영향을 주고, 전 지구의 날씨 패턴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엘니뇨는 태평양 동쪽의 해수가 비정상적으로 따뜻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때 인도네시아, 호주 등 서태평양 지역은 가뭄에 시달리고, 남미 서부에는 집중호우가 내린다. 반면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가 비정상적으로 차가워지는 상태로, 서태평양과 동남아 지역에 폭우와 홍수를 유발하고, 남미 해안에는 가뭄이 발생한다. 이 두 현상은 평균적으로 2~7년 주기로 번갈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주기와 강도가 불규칙해지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이러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강한 엘니뇨는 전 세계 기상 패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단지 ‘자연스러운 주기’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말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가 엘니뇨·라니냐의 발달 속도와 강도, 지속 기간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상 엘니뇨’ 또는 ‘이중 라니냐’와 같은 비정형적 양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기후시스템의 비정상화는 단지 기상 이변을 넘어, 농업, 수자원, 생태계, 공공보건 등 사회 전반에 복합적인 충격을 준다. 더욱이, 최근의 엘니뇨와 라니냐는 과거보다 ‘동시에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어졌고, ‘다른 기후 요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복잡해졌다. 예컨대 엘니뇨는 열돔 발생, 허리케인 증가, 북극 해빙 감소 등과 동시 발생하며, 기후 재난의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들은 더 이상 ‘주기적인 변덕’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위기’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정책적 대응이 절실해지고 있다.

 

2023~2025 엘니뇨·라니냐 사례와 기후변화의 연결고리

2023년 중반부터 시작된 엘니뇨는 기후과학계가 예의주시했던 사건 중 하나였다. 태평양 동부의 해수 온도가 예년 대비 2도 이상 상승하면서, NOAA(미국해양대기청)는 이 엘니뇨를 ‘강력한 엘니뇨’로 공식 발표했다. 그 결과, 전 세계 각지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했고, 특히 아프리카 동부에서는 극심한 홍수, 남아메리카 페루와 에콰도르에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한국 역시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2024년 여름, 한반도는 기록적인 고온과 열대야, 국지성 폭우가 반복되었으며, 엘니뇨에 의한 기압계 교란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겨울에는 남서풍의 유입으로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어, 계절적 리듬이 무너지고 농작물 재배 주기에 혼란이 발생했다. 이후 2025년 초에는 라니냐가 빠르게 시작되며 ‘급반전’ 현상이 나타났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의 급격한 냉각과 함께 동남아, 인도, 중국 등지에 폭우와 홍수를 유발했고, 북미 서부와 브라질 남부는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다. 이처럼 단기간에 강한 엘니뇨와 라니냐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중(雙) ENSO 현상’이라고도 불리며,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러한 ENSO(엘니뇨·남방진동)의 패턴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 ENSO는 주기적이고 비교적 안정적인 사이클을 보였지만, 지금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 지속 기간의 비정형화: 엘니뇨가 1년 반 이상 지속되거나, 라니냐가 3년 연속 이어지는 사례 발생

 - 중심 위치의 동향 변화: 전통적 엘니뇨는 남미 해안 인근이 따뜻해지지만, 최근엔 태평양 중부 중심의 ‘Modoki 엘니뇨’ 출현 증가

 - 강도 증가와 빠른 전환: 해수 온도가 과거보다 더 빠르게 오르거나 떨어지고, 전환 간격이 짧아짐

 - 복합재난의 연쇄 발생: ENSO로 인한 기후 이상이 열돔, 가뭄, 산불, 허리케인 등 다양한 기후재난과 연결 이러한 변화는 ENSO 자체가 기후변화에 의해 증폭되고 있음을 시사

즉, ENSO는 더 이상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아니라, ‘기후재난의 촉진자’ 역할을 하며, 그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ENSO 패턴의 변화는 기상 예보의 어려움을 증가시키고, 재해 대응 체계의 사전 대비 가능성을 낮춘다. 또한, 농업, 에너지, 수자원, 보건 분야의 불확실성을 높여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ENSO 시대,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퍼즐 조각

엘니뇨와 라니냐는 이제 단순한 기상 용어가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ENSO는 기후 모델링과 예측의 중요한 도구였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그 양상이 변화하면서 과거의 통계나 모델이 더 이상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보다 정교하고 복합적인 기후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우선, ENSO 감시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해수 온도 측정에 그치지 않고, 해양 순환, 대기 기류, 수증기 이동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전 지구적 관측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미 WMO는 2025년부터 ENSO-2.0이라는 감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 기상청도 이에 협력하고 있다. 둘째, 각국의 정책 대응 체계를 ENSO 기반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농업 재해보험, 가뭄 대비 수자원 계획, 에너지 수급 전략 등은 ENSO 발생 여부에 따라 사전 대응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예컨대 엘니뇨가 예측되는 해에는 가뭄 대비 수자원 비축이, 라니냐 시기에는 홍수 대비 인프라 점검이 필수적이다. 셋째, 기후 모델링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기후 예측 모델은 ENSO를 단일 요인으로 취급하지만, 기후변화 시대에는 ENSO가 다른 기후 인자들과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다변수 기반의 시나리오 접근과 AI 기반 예측 모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넷째, 시민사회와 산업계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ENSO는 당장 눈에 띄는 자연재해는 아닐 수 있으나, 그로 인한 간접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다. 따라서 언론 보도, 교육, 기업 CSR 활동 등을 통해 ENSO의 영향과 이에 따른 대비 행동이 일상화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ENSO 대응이 곧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열쇠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들은 기후시스템 내부의 자연 진동이지만,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그 진폭과 파급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 실현은 ENSO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기도 하다. 엘니뇨와 라니냐,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기상 재난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규범이며, 우리가 그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가 앞으로의 피해 규모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