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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망 안정성, 왜 아직도 기저발전이 필요한가?

by 열씸열씸 2025. 7. 16.

전력망 안정성 관련 그림

전력망의 안정성은 국가 전력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이는 단순히 정전 방지 차원을 넘어, 산업·경제·의료·교통 등 사회 전반의 기능이 멈추지 않도록 유지하는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최근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출력이 일정하지 않은 에너지원들이 전력망을 위협하는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저발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원자력이나 화력 같은 기저발전은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해 전력망을 뒷받침하며, 주파수 유지·예비력 제공 등 전력계통의 기본 작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본문에서는 전력망 안정성의 개념과 구조, 기저발전이 갖는 기술적·운영적 역할을 중심으로 신재생 중심 체계로의 전환 과정에서 왜 기저발전이 아직도 필수적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전력망의 숨겨진 구조와 그 중심에 선 기저발전

전기라는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대 사회가 작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프라입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동안, 고속철이 안전하게 달릴 때, 데이터센터가 수많은 정보를 처리할 때, 이 모든 곳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전력을 실시간으로 소비지에 공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전력망'입니다. 전력망은 단순히 전선을 연결한 구조가 아닙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 변전, 배전을 통해 각 가정과 산업현장으로 보내는 복합적이고 정밀한 시스템이며, 실시간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아야만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전력망이 흔들릴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주파수 불안정입니다. 일반적으로 교류 전력의 주파수는 60Hz(한국 기준)로 유지되어야 하며, 이 수치가 미세하게라도 흔들리면 송전 기기, 산업 장비, 컴퓨터 등 수많은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파수 유지는 단순히 전력량을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정하고 예측 가능한 속도로 출력되는 발전원이 전력망에 꾸준히 연결되어 있어야만 가능한데,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기저발전입니다. 기저발전은 하루 24시간, 계절과 날씨에 관계없이 일정 출력을 유지하는 발전원입니다. 대표적으로 원자력, 석탄화력, 일부 LNG 복합화력 발전소가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낮은 변동성과 높은 신뢰도로 전력망의 ‘기초를 잡아주는 존재’입니다. 최근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늘고 있지만, 이들 에너지원은 출력 변동이 심하고 예측이 어려워 주파수 유지나 예비력 공급 등 기본적인 전력망 운영기능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그 기반에는 기저발전이라는 '안정의 중심'이 반드시 존재해야 전력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저발전이 전력망에서 수행하는 기술적 핵심 역할

기저발전은 단순히 전기를 많이 만드는 역할을 넘어서, 전력망 운영의 ‘기술적 축’으로 기능합니다. 대표적인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파수 유지(Frequency Regulation)입니다. 발전량과 소비량이 불일치할 경우 전력계통의 주파수가 흔들리게 되는데, 기저발전은 큰 용량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계통의 기준 주파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원자력과 대형 석탄발전소는 고정된 출력 운전이 가능하여 주파수 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둘째, 예비력(Reserve Power) 제공 기능입니다. 기저발전은 출력 조정이 빠르지는 않지만, 일부 화력발전소는 필요 시 출력 증가가 가능하여 예기치 않은 수요 급증이나 신재생 출력 급감 시 예비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전력 부족으로 인한 정전을 예방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셋째, 무효전력(reactive power) 공급입니다. 무효전력은 실제 사용되는 전력은 아니지만 전압 유지와 계통 안정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재생에너지는 무효전력을 자체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저발전에서 이를 공급하지 않으면 전력망이 불안정해집니다. 넷째, 인프라 기준점 역할입니다. 전력망은 발전소를 기준으로 송전망이 구성되기 때문에, 일정한 출력과 위치를 가진 기저발전소가 존재해야 효율적인 송배전망 설계가 가능합니다. 반면 소규모·분산형 재생에너지는 위치가 분산돼 있어 인프라 계획이 복잡해집니다. 다섯째, 시스템 보조서비스입니다. 전력망 운영에는 단순 발전 외에도 다양한 기술적 지원이 필요한데, 기저발전은 주파수 조절, 출력 추종, 고장 시 응답 등 다양한 보조기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은 현재의 태양광·풍력 발전에서는 제공이 어렵거나 제한적입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핵심 기능은 기저발전이 단순히 '많은 전기를 싸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전력망이 정밀하게 작동하고, 신재생이 급증하는 환경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제도적으로도 기저발전 없이 전력망을 설계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매우 위험한 선택입니다.

 

전력망의 뿌리, 기저발전은 단기 대안 아닌 구조적 기반

기저발전은 단기적 수요 대응이나 비용 문제를 넘어서, 전력망의 구조적 기반으로 존재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기저발전을 축소하거나 단계적 폐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저발전을 대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기술이나 정책 이전에 바로 전력망의 '물리적 한계'입니다. 전력망은 예측 가능하고 제어 가능한 출력이 꾸준히 존재해야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와 달리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변동성으로 인해 자체만으로는 전력망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저장장치(ESS), 스마트 그리드, 수요 반응 등 보완 수단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들이 아직은 기저발전이 제공하는 안정성과 범용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준은 아닙니다.

 

따라서 미래 전력망 설계는 기저발전을 무조건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 남길 것인가', '어떤 역할로 전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예컨대 원자력의 경우 탄소배출이 거의 없고, 출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석탄화력은 점진적으로 감축하되, 고효율·저오염 기술 도입 및 전력망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일정 역할을 남기는 전략도 가능합니다. 에너지 정책은 균형과 안전이 핵심입니다. 감성적 접근이나 단기 유행에 따라 기저발전을 급격히 축소하면 오히려 전력망 불안, 전기요금 상승, 산업 생산 차질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재생 확대와 기저발전 유지 간의 균형, 기술 개발 속도에 맞춘 전환 시점 조율, 그리고 전력망 전체의 물리적 특성을 반영한 정책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국 전력망이란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그 뿌리가 되는 기저발전을 잘 다루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재생에너지 정책도 뿌리 없는 나무처럼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